그림그리기
눈사람 I
야옹이버스
2002. 2. 18. 01:28
![]() 눈사람I 눈이 내린다는 것은 함께 놀 아이들이 없어도 밖으로 나갈 이유가 되었다. 1년 동안 나는 집에서 갇혀 살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옆 건물에 살던 한국인 친구 한승, 한준 형제의 집에는 자주 놀러 갔지만 동네 밖으로 나가서 노는 일은 드물었다. 어쩌다 한 번씩 낯선 곳으로 갈 수 있었지만 기껏해야 리플립 선생님에게 부담을 지우면서 찾아갔던 학교 친구의 생일 파티이거나, 나를 데리러 다녀야 했던 엄마를 귀찮게 하면서 몇 번 찾아가 놀았던 야구교실 정도였으니까. 혼자서 갈 수 있었던 곳은 집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던 공원이었는데, 그곳에서는 비둘기와 다람쥐에게 먹이를 주면서 놀았다. 한승, 한준 형제가 알려준 그곳도 그들과 함께 가지 않으면 따분했지만 학교 말고는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혼자서라도 주말마다 찾아가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얼마나 집 밖으로 뛰어나가고 싶었을까? 하지만 밖으로 나가지 못해서 답답해 했던 기억은 별로 없다. 밖으로 나가봐야 익숙한 놀이터나 동네 아이들도 없고 낯선 사람들 -- 한국에서의 낯선 사람들보다 그곳의 낯선 사람은 훨씬 더 낯설다. -- 뿐인 것을 아니까. 시커먼 밤이 되도록 정신없이 놀아본 기억을 그리워하기도 전에, 어느날의 늦은 밤 새까만 흑인과 단둘이 엘리베이터를 타게 됐고 혹시 그가 말이라도 걸까 무서워하던 나는 그가 내리면서 나에게 하얀 이를 보이며 웃는 걸 본 후로 집에서의 생활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 적응한다는 것은 눅눅한 카패트 위에 앉아서 멍하니 TV 를 보는 일이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들이 쏟아지는 TV 를 종일 바라보고 있는 것, 그때 난 그러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다. 눈이 그렇게나 많이 오는 것을 예전에 본적도 없지만, 그곳의 겨울은 항상 눈이 무릎까지 쌓이곤 했다. 이상하게도 겨울 내내 하얗게 눈이 쌓이는데도 눈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곳에서 눈사람은 그림책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고, 그 그림책들에는 내가 알던 눈사람과는 다르게 눈사람이 곤충같이 생겼다. 그림책에서 본 그런 눈사람을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지금 내 기억에 처음으로 남아있는 눈사람이 그때 만들어졌다. 나를 처음 보았을 때 학교 이곳 저곳을 데리고 다니면서 친구가 되어준 제씨 같은 친구면 더 좋겠지만 항상 나를 못살게 굴던 이탈리안 무놀리 같은 아이어도 좋다. 매콤한 카레 냄새가 났던 인도계 라디쉬나, 거짓말을 많이 해서 싫어했던 케런 같은 아이라도 좋다. 나와 어울려 놀 수 있는 동네 아이들이, 지금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나를 보아준다면, 처음엔 다가오기 멋쩍고 수줍더라도, 어린 아이들답게 눈만 맞아도 친구가 되도록, 나보다 더 큰 삼 단 눈사람을 만들어 아이들을 불러야지. 눈사람은 내가 살던 아파트 앞 길가에 만들어졌다. 눈도 붙이고, 나무 가지로 팔도 만들었다. 눈덩이를 굴리는 내내 둘러봐도 창문으로 내다보는 아이도 없었고 곁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더더욱 없었다. 도대체 그곳의 아이들은 다 어디 모여 있는 걸까? 다음날 아침에도 집 앞으로 나왔다. 한 인본계 남자아이가 길에서 자기 엄마를 타고 놀다가 내가 만든 눈사람에 관심을 보였다. 그 아이가 눈사람 곁에 다가가는 것을 본 나는 내가 만든 눈사람이라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머리 속에서 사전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사전을 덮기도 전에 그 아이는 눈사람을 발로 차버렸다. 하긴 이미 눈사람은 밤새 머리가 반쪽이 되어있었고 내가 만든 거라고 자랑할 모양이 못되었다. 그래도 그렇게 누군가 부수는 것을 바라보면서 옆에 서 있자니 부숴진 눈사람과 함께 한없이 초라해졌다. 다가가서 그 아이와 함께 눈사람을 부쉈다. 눈사람을 부수는 것도 그 아이와 함께 하는 놀이가 된다면, 내가 만든 것이 아닌 척 하기가 이 놀이에서 가장 중요하다. 그 아이와 내가 아닌 척하는 나와 눈사람을 만든 나, 이렇게 세 사람이 눈사람을 부쉈다. 학교에 가고 싶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따라서 웃을 수 있는 아이들과 몸짓 발짓으로 친절하게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이 보고싶다. 그곳에서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건 집에서 혼자 TV를 보는 것과 같았지만 그래도 바라보기만 하는 것보단 좋다. 점심 시간이 되어도 점심 시간인 줄 몰랐던 나는 아이들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따라갔다가 나 혼자 도시락통이 없어서 혼자 교실로 다시 돌아와야 했고, 체육시간이 되어도 그날 시간표를 몰랐던 나는 혼자서 체육복 없이 뛰어다녀야 했다. 심지어 그들과 해어지던 날 난 울어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들이 웃었으니까 나도 웃으면서 해어졌는데, 그들이 울었으면 아마 나도 울었을 테지. 그래도 TV 밖에 있는 것보단 학교에 있는 것이 좋았다. 그곳에 가려면 아침마다 버스에 올라타기만 하면 됐는데, 겨울방학이어서 노란 버스가 오지 않는 거란다. 올라타자마자 알아듣지 못하는 불어로 인사를 건네던 무섭게 생긴 기사 아저씨가 쉬시는 동안에 나는 집에서 갇혀 살아야 했다. ================================================================== 예전에 저에게 좋아하는 작가분과 술을 함께했다고 자랑하셨던, 이홍*씨를 기억하시나요? ^__^ '한잔'이란 제목의 칼럼에 등장하셨죠.. 몇회였는지 모르겠는데;; 이 글은 그 이홍주씨께서 쓰신 글이랍니다 ^^ 작가 공부도 하고 계신 분이죠.. 오늘부터 5일간.. 홍주씨의 미니씨리즈 5부작, 스펙터클 환타지~ 는 아니고 ^^;;; 휴먼드라마~ '눈사람' 을 제 그림과 함께 보여드릴께요.. 기대하시라~~~ ^^ 여러분 좋은 한 주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