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사람II 옛날처럼 이곳엔 눈이 오지 않는다. 눈이 내려서 아스팔트 위에 얼음이 얼면 아빠가 만들어준 썰매를 타기고 놀기도 했는데... 아! 엄마가 젊어서 신었다는 낡은 스케이트의 날을 뽑아 널빤지에 못을 밖아 만든 그 썰매, 그러고 보니 그렇게 무뚝뚝하신 아버지가 어린 나를 위해서 손수 썰매도 만들어주셨구나. 창 밖으로 운동장에 쌓이는 눈을 내려다 본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 방향만 바뀌었을 뿐 같은 운동장을 내려다 보고 있지만 이렇게 눈이 많이 쌓이는 운동장은 본적이 없다. 평지보다 2m 가량 움푹 꺼진 운동장은 온 동네 빗물을 끌어 모아 가끔씩 1층의 교실까지 빗물이 스며드는 것은 익숙했지만 (장마 때 운동회를 한다면 카누 타기 같은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이 이렇게 많이 쌓인 낯선 운동장엔 뭔가 기념할만한 것이 필요해보였다. 쉬는 시간마다 밖으로 나가서 눈사람을 만들었다. 철봉 위에 차분히 쌓이던 눈들을 털어내어 주먹만하게 뭉치를 만들고 운동장 구석에 내려놓아 굴리기 시작했다. 점심 시간에도 굴렸는데 어인 일인지 운동장에 아이들이 아무도 나오질 않았다. 꼭 일요일에 혼자 학교에 나온 것처럼 하얀 운동장 위엔 나 뿐이었다. 소위 불량배라는 아이들이 나를 봤다면 시비를 걸면서 눈 뭉치를 내놓으라 할 법도 한데… 눈사람을 다 만들지는 못했다. 쉬는 시간을 이용해 몸통만 커다랗게 굴려놓았더니 날이 어두워졌고 자율학습을 해야 했으니까. 엄마는 내가 학교에서 눈사람을 만드는 걸 생각이나 하실까? 썰매를 만들어주셨던 아빠도 내가 손을 호호 불어가며 눈사람을 만드는 걸 아실까? 자정이 되서 엄마아빠가 차를 타고 나를 데리러 오시면서도 내가 학교에서 공부만 하고 있을 꺼라 생각하시겠지? 그래도 오늘 밤에 데리러 오시면 나에게 못 다 만든 눈사람이 있는 걸 아실까? 내가 무얼 만들고 싶어하지는 아실까? 내가 말씀 드리면 이해는 해주실까? 그날도 자정이 되어 부모님이 날 데리러 오셨다. 차를 타고 운동장을 벗어나면서 구석에 남겨진 눈덩이를 보는데, 가로등 불빛이 반사되어 희미하지만 눈덩이는 파랗게 빛나보였다. 언제 또 눈이 많이 올까? 대학에 가면, 사회에 나가면 눈이 많이 와줄까? 언젠가 오늘처럼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오늘보다 더 쉬는 시간이 없을 것만 같다. 그날이 오면 나는 그걸 아쉬워하기나 할런지... =============================================================== 85호부터 5일간..(오늘이 2번째 날이죠?) 그림그리기 칼럼의 5부작 이벤트.. 같은 팀 동료이신 '이홍주' 씨의 미니시리즈 '눈사람' 이 연재(?)됩니다 ^^ 야옹이버스의 그림과 함께 느껴보세요.. 요즘 야옹이버스는 5부작에 맞춰 매일 그림 그리느라 정신이 없답니다 @.@ ^________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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